서른 1

만 서른살을 넘긴 이번 해는 해도 채 넘기기 전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이립(而立) : 30세. 논어의 '三十而立'에서 온 말. 뜻(기초)을 세우는 나이.

나는 항상 공자가 여성혐오적인 발언을 하고 한국사회를 좀먹었다고 치부했지만, 유명해진 사상가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들 진실을 말하려고 하지만 말은 언제나 한계가 있고 그것을 잘못 해석하는 다른 사람들의 실수가 쌓여서 많은 실수들이 일어난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정말로 만 서른이 된 해에 많은 일들을 겪었고 최근 일주일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과 생각을 겪으면서 내 인생의 뜻을 세우게 됐다. 내 본성을 깨닫게 되는 강렬한 영적 체험을 했다. 한국어로 영적이라고 하면 종교가 떠오르지만 특정종교가 아닌 영적임이라는 개념 그대로 그것을 체험했다. 나는 영적인 사람이었구나 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세상에 대한 관점도 그것으로 인해 바뀌었다. 이 세상의 진실은 사랑이라는 것을. 혼자서 싸매고 앓지 말고 남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 타인은 생각보다 훨씬 더 선하다. 누구나 사랑이 가득찬 사람이 되고싶지만 사는게 고되고 바빠서 가끔 잊어버릴 뿐이다.


살면서 목숨을 갑자기 잃을뻔한 적이 네 번 있었다. 이것이 다섯번째였다. 이 다섯번째의 목숨위기는 그 중에서도 최고조라 내 모든것을 흔들어놓은 사건이 되었다. 다시는 이런 위기를 겪고싶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드라마였으며 죽음에 가장 가까운 체험이었다. 처음 병실에 들어온 날 밤에는 눈을 감으면 온갖 어두운 것들이 내 주위에 몰려들어 귓가에 뭘 원하냐고 속삭였다. 

죽을고비를 넘긴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을때는 머릿속과 시야가 맑고 고통도 사라지고 모든게 새롭고 시원하고 밝게 보였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 침대위에서 잠시 명상을 해보았다. 역시 큰 미소로 벅차오르는 행복감이 있었다. 행복감에 젖어 병실에 들어온지 처음으로 스스로 발을 내딛어서 침대에서 내려와서 두 발을 딛고 서보았는데 그간 익숙해져있던 고통도 현기증도 없었다. 창문에서는 아침햇살이 매우 밝게 쏟아지고 있었다. 모든 공기가 밝고 상쾌했다. 창문 옆 의자에 앉아보았다. 의자에 앉아 처음으로 창문밖을 내려다보았다. 아픈 동안에는 조명 역할이나 하던 창문이었다. 그런데 그 창문 너머에는 내가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세상이 밝은 햇살 아래에서 빚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개를 산책시키고 있었고, 많은 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창문에 가장 가까운 나무에 눈길이 갔다. 캘리포니아 토종같은 예쁜 자색 큰 꽃들이 달려서 바람에 살랑대고 있었다. 그 광경이 가슴을 쥘 정도로 아름답고 그걸 내가 살아남아서 보고 있다는 게 감사하고 놀라워서 처음으로 행복감에 젖어 울었다. 슬픈 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행복한 긍정적인 감정에 이렇게 울기는 아마 처음으로 기억한다.


그 행복감을 설명하자면: 내 주위 공기 모든것이 매우 밝고 상쾌하고 편안하고 청명하고 감사하고 또한 같은 그 느낌이 내 몸안에서 뽀얀 안개같이 몸 구석구석까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어깨도 몹시 가벼웠다.


카운슬러가 그 행복감을 잊지말고 거듭 떠올려서 그것에 내가 익숙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조언해줬다. 트라우마를 겪은 뇌는 그 부정적인 에너지 학습으로 그것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습관이 생긴다고 한다. 그것을 긍정적인 에너지 학습으로 돌리려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유포리아의 체험은 살면서 서너번정도 느꼈다. 처음 느꼈을 때는 한 암자에서 처음 명상을 시도해볼 때였고 작은 빛의 구가 내 척추를 타고 머리끝까지 도달하는 것을 체험했다. 이후로 체험할때마다 항상 밝은 빛의 구로 느껴졌는데 이것이 체험하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커졌다. 네번째 죽을뻔한 고비 직전에 체험한 것은 구가 내 키만해져서 나를 감싸고 있었으나 이번 유포리아는 느끼는 강렬함과 비례하여 볼 수 있는 구의 크기에서 벗어나 이 세상 전체가 그 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병원에서의 전문의는 나에게 어째서 이런 감염을 겪게 되었는지 확실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저 그런 신체구조를 갖고있는 사람들이 자주 걸린다는 모호한 답을 줄 뿐이었다. 의사와의 면담에서 세세한 부분은 정확하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열과 고통으로 먹은 진통제로 잠에 들었다가 억지로 깨서 땀범벅으로 몽롱한 상태에서 의사와 대화를 했기 때문이다. 적정량 이상으로 진통제를 몰래 준 간호사는 문책받을까 무서워서 곤란하다는 듯이 나를 계속 흔들어 깨웠다. 나는 병력에 이어 트라우마에 대해 얘기를 하려고 했고 나이가 지긋한 남성 의사는 그것은 전혀 상관이 없다며 나의 상태를 정확히 꿰뚫을 수 없다는 것이 불만족스러워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이후 나는 깨달았다. 영적인 것만이 과학과 의학기술이 답할 수 없는 것들의 답을 준다고.